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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가치가 있는 우리나라 여행지

남북국 시대의 역사와 문화유산: 통일신라와 발해의 흔적을 찾아서

 

1. 통일신라와 발해의 형성: 남북국 시대의 시작

삼국 통일 이후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신라는 676년 나당 전쟁을 거쳐 한반도에서 당나라 세력을 축출하며 통일신라를 이루었고,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은 698년 대조영을 중심으로 발해를 건국하였다. 이렇게 한반도 남부와 만주 일대는 남북국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통일신라는 한반도 전역을 통치하는 유일한 국가로서 9주 5소경 체제를 확립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반면, 발해는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면서도 당나라 및 주변 국가와 교류하며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발해는 5경 15부 62주의 행정체계를 마련하며 고도로 발전된 국가 운영 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문화적 배경은 남북국 시대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유산을 남겼다.

통일신라는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청해진을 통해 해상무역을 발전시켰으며, 이를 통해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또한, 불교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면서 여러 사찰과 불상, 석탑 등을 건설하여 문화유산으로 남겼다. 반면, 발해는 문왕 대에 이르러 당나라와의 관계를 안정시키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며 일본과도 활발히 교류하였다. 이러한 남북국 시대의 정치적·문화적 특징은 후대의 역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통일신라의 행정 체제는 9주 5소경을 기반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고자 하였다. 특히, 5소경은 지방 거점 도시로 성장하며 지방의 문화와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 발해의 행정 체계는 5경 15부 62주로 조직되었으며, 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체제였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을 비롯하여 동경성과 서경성 같은 주요 거점 도시들은 활발한 경제 및 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2. 통일신라의 문화유산: 불교 문화와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통일신라는 불교를 국가 통합의 이념으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특히,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서 황룡사, 망덕사지 삼층석탑, 감은사와 같은 불교 유적지를 비롯해 첨성대, 포석정 등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황룡사는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목탑이 있었던 사찰로,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비록 현재는 폐허만 남아 있지만, 그 규모와 역사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망덕사지 삼층석탑은 신라의 석탑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조형미와 균형미가 뛰어나며 신라 후기 불교 건축의 특징을 담고 있다.

또한, 감은사는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세운 사찰로, 문무왕의 해중릉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감은사지에는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신라 왕실의 불교 신앙과 해양 문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첨성대는 신라 시대 천문 관측소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신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포석정은 신라 왕족과 귀족들이 연회를 즐기던 공간으로, 독특한 석조 구조물이 남아 있다.

경주 외에도 충청북도 보은군에 위치한 법주사는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로, 특히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이 유명하다.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탑으로, 통일신라의 건축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경북 안동의 봉정사 역시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이 보존되어 있다.

 

 

3. 발해의 수도 상경성: 해동성국의 영광

발해는 8세기 중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며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강대한 국가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수도 상경성이 있었다. 상경성은 현재 중국 지린성(吉林省) 둔화(敦化) 지역에 위치한 발해의 수도로,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였다. 상경성에는 정교한 궁전과 사찰이 있었으며, 도로와 하수 시스템까지 정비된 선진적인 도시였다. 특히, 발해 석등과 정혜공주 묘는 발해의 건축 및 조각 예술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상경성 외에도 발해는 여러 거점 도시를 두고 발전하였다. 동경성(현재의 중국 닝안)과 서경성(현재의 중국 우수리스크) 등 주요 도시는 행정과 경제, 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일본 및 다른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역을 이루었다. 또한, 발해의 도로망과 운하 시스템은 물류와 상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기반을 통해 발해는 동아시아의 무역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발해

 

4. 남북국 시대를 기억하는 여행지: 신라와 발해의 흔적을 찾아서

남북국 시대의 유적들은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주의 신라 유적 외에도 강릉의 굴산사지를 통해 통일신라의 불교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발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함경도 지역의 고분군도 있다. 국내에서 신라와 발해의 흔적을 더욱 깊이 탐방하려면,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여 당대의 다양한 유물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외에서는 중국 지린성 일대의 발해 유적뿐만 아니라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 지역에서도 발해 성터가 발견되었다. 이는 발해가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연해주 지역까지 지배했던 강력한 국가였음을 증명한다. 특히, 정효공주묘는 중국 내에서도 중요한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으며, 내부의 벽화와 묘지석은 발해 문화의 독자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유적들은 남북국 시대가 단순히 한국사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남북국 시대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는 것은 한국의 역사적 뿌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